남해 산자락이 품은 고사마을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진목리에 자리한 고사마을은 산과 들, 갯벌과 바다가 한데 이어지는 농어촌 마을이다. 해안선을 따라 굽이도는 길을 지나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화려한 관광 시설이나 상업 시설보다 차분한 생활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에 실린 갯내음과 흙냄새가 섞이고, 산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갯벌 가까이에서 부서지는 잔잔한 물결이 마을 특유의 고요를 이룬다.
아버지의 품을 닮은 산세
고사마을 뒤편에는 금음산 줄기가 놓여 있다. 좌우로 뻗은 두 산자락이 마을과 들판을 둥글게 감싼 형세다. 아이를 품에 안으려 양팔을 벌린 아버지의 모습이나 날개를 펼친 새를 떠올리게 하는 지형이다. 산자락 사이에는 집들이 모여 있고 작은 골짜기와 소류지, 평평한 들판이 바다 쪽으로 이어진다.
고사마을이라는 이름은 뒷산에 선비가 글을 읽는 명당인 고사독서혈의 형세가 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지형과 배움을 중시하던 옛사람들의 인식이 함께 담긴 지명인 셈이다.
주민들의 생활 터전은 웃땀과 큰땀, 송등으로 불리는 세 곳에 나뉘어 형성됐다. 산이 마을 뒤를 받치고 바다가 앞에 펼쳐진 구조여서 자연환경과 주거 공간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둥글게 이어진 산세 안쪽에는 집과 골목, 농경지가 자리하며 바닷가 마을의 소박한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정류장에 남은 마을의 시간
마을 입구의 작은 버스 정류장에는 고사마을의 유래를 설명하는 빛바랜 안내판과 남해공용터미널을 오가는 설천선 농어촌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다. 운행 횟수가 많지 않은 농어촌버스는 주민들의 이동을 잇는 생활 교통수단이다. 정류장은 단순히 버스를 타는 장소를 넘어 주민들이 장을 보거나 외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일상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마을회관 옆에는 고사마을 전경을 담은 항공사진 안내도가 설치돼 있다. 안내도에는 웃모, 큰모, 솔등모, 칠우, 남산모, 게섬모 등 마을에서 사용해 온 옛 지명과 갯벌 작업장이 표시돼 있다. 작은 지명 하나하나는 주민들이 오랫동안 구분하고 기억해 온 생활 공간을 나타낸다.
외부에서 보면 조용한 농어촌 마을이지만, 항공사진에 기록된 지명과 작업장은 이곳이 여러 세대의 생활과 생업이 이어진 삶의 터전임을 보여준다. 마을 안쪽의 집과 들판, 바닷가 작업 공간은 서로 떨어진 풍경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돼 있다.
221년을 넘긴 팽나무
마을 안쪽 길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킨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는 1982년 남해군 보호수로 지정됐다. 2023년 기준 수령은 221년을 넘었으며, 높이는 12미터, 가슴높이 둘레는 414센티미터에 이른다. 여러 사람이 함께 팔을 벌려야 감쌀 수 있을 만큼 굵은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가 인상적인 노거수다.
안내 표석에 따르면 이 팽나무는 정자나무 인근에 살던 밀양 박씨 문중의 선조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 일가는 이곳에 약 400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으며 후손들도 나무 주변에서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소개돼 있다.
팽나무는 마을의 동제를 지내는 당산나무는 아니지만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쉼터 역할을 해왔다. 모내기를 마친 농부들이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가뭄이 심할 때에는 당산나무에서 기우제를 지낸 뒤 이 정자나무에서도 비를 기원했다고 전한다.
거칠어진 나무껍질과 넓은 그늘에는 고사마을 주민들의 노동과 휴식, 기원이 함께 쌓여 있다. 보호수라는 행정적 의미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생활 유산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무성한 가지 아래로 형성된 그늘은 지금도 마을 안에서 눈에 띄는 휴식 공간을 만든다.
꾸미지 않은 갯마을의 일상
고사마을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별도의 체험 시설을 집중적으로 조성한 어촌체험휴양마을이 아니다. 법정리 면적 약 3.82제곱킬로미터인 진목리에 속하며, 약 100가구와 150명가량의 주민이 어촌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정주어항 기반의 갯마을이다.
65세 이상 주민이 절반을 넘는 고령화 마을이어서 골목과 들판의 풍경은 대체로 차분하다. 밭으로 향하는 경운기 소리, 갯벌 위를 지나는 백로의 날갯짓,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마을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채운다. 빠르게 소비하는 관광지의 모습보다 농사와 어촌 생활이 이어지는 정주 공간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비탈진 밭길을 지나 선착장 방면으로 내려가면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갯벌과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둑길 주변에서는 농경지와 해안, 갯벌이 가까운 거리에서 이어지는 남해 농어촌의 지형을 살펴볼 수 있다. 흙담과 밭두렁, 좁은 골목, 바닷가 작업장은 꾸며낸 전시물이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생활 공간이다.
고사마을의 특징은 화려한 볼거리보다 산자락 안에 형성된 마을 구조와 오랫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생활 모습에 있다. 따라서 마을을 둘러볼 때에는 관광 시설을 찾기보다 지형과 오래된 지명, 보호수, 갯벌을 서로 연결해 살펴보는 편이 고사마을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방문 전 확인할 사항
고사마을과 고사마을회관은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364번길 37 일원에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설천 방면 농어촌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버스 운행 횟수가 많지 않으므로 출발 전에 해당 정류장 시간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가용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마을 안길은 폭이 좁다. 차량 통행과 주민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차 가능 여부를 현장에서 살피고, 안전한 장소에 차량을 세운 뒤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적절하다.
마을 내부에는 식당이나 편의시설이 없으므로 필요한 물품과 마실 물은 방문 전에 준비해야 한다. 골목 바로 옆에는 주민들이 생활하는 민가가 이어져 있다. 큰 소리를 내거나 주거 공간을 촬영하는 등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발생한 쓰레기는 방문자가 되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고사마을은 주민들의 삶이 이어지는 생활 터전이다. 보호수 주변과 농경지, 갯벌 작업장 역시 관광객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므로 시설물과 농작물, 작업 도구를 훼손하거나 주민의 이동을 가로막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조용한 관찰과 기본적인 배려가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고사마을을 온전히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고사마을 핵심 정보
| 구분 | 내용 |
|---|---|
|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진목리 |
| 고사마을회관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설천로364번길 37 |
| 마을 성격 | 정주어항을 기반으로 한 농어촌 갯마을 |
| 주요 지형 | 금음산 줄기, 들판, 소류지, 갯벌, 해안 |
| 보호수 | 1982년 지정 팽나무 |
| 보호수 규모 | 2023년 기준 수령 221년 이상, 높이 12미터, 둘레 414센티미터 |
| 대중교통 | 남해공용터미널에서 설천 방면 농어촌버스 이용 |
| 방문 유의사항 | 운행 시간 확인, 좁은 마을길 주의, 주민 사생활 보호, 쓰레기 되가져가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