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애구지 길, 1500년 전 가야 숨결 걷다

김해 애구지 길, 1500년 전 가야 숨결 걷다
늦가을 단풍이 물드는 계절, 경남 김해에서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 여행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여행은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걸어봄김해’ 2코스, 일명 ‘애구지 길’을 따라 걷는 여정이다. 출발지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대성동고분군, 가야 왕의 숲 수릉원, 그리고 김해의 상징인 수로왕릉까지 이어진다.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만나는 금관가야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인 대성동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금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전시하는 곳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1500년의 세월을 견뎌온 철제 무기와 갑옷, 화폐로 사용된 덩이쇠 등 뛰어난 제철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화려한 말갖춤새와 대외교류를 통해 들어온 위세품들은 금관가야의 국제적 위상을 잘 나타낸다.
최근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알려진 가야곡도(굽은칼)의 실물도 전시되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가상현실 게임을 통한 가야 역사 탐험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고분을 재현한 전시 공간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일본과의 교류 흔적까지 엿볼 수 있다.
대성동고분군,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박물관을 나서면 초록 능선 위에 펼쳐진 대성동고분군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고분군은 1세기부터 5세기까지 조성된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군으로,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무덤 표식들이 줄지어 있으며, 그 사이로 김해 도심이 내려다보인다.
대성동고분군은 수로왕의 탄생지인 구지봉과 생활 터전인 봉황동 사이에 위치해 있다. 1990년 첫 발굴 이후 380여 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철기·토기·구슬 등 금관가야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 지역은 ‘애구지’라 불리며, ‘작은 구지봉’이라는 뜻으로 수로왕과 관련된 지명이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을 담은 수릉원
대성동고분군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옛 김해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수릉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의 사랑 이야기를 테마로 한 공원이다. 동서로 길게 뻗은 산책로는 동쪽이 수로왕의 길로 구실잣밤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남성적인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서쪽은 허왕후의 길로 야생감과 돌배 등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조성되어 있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길을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걷다 보면 허왕후 동상이 나타난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 씨앗이 김해 특산품인 ‘장군차’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방문객들의 관심을 끈다.
김해의 상징, 수로왕릉
여정의 마지막은 김해의 대표 유적지인 수로왕릉이다. 수로왕릉으로 가는 길목에는 ‘명월’이라는 한옥 카페가 자리해 있다. 이 카페는 수로왕과 허왕후가 첫날밤을 보냈다는 ‘명월사’에서 이름을 따왔다. 붉은 홍살문을 지나 마주하는 왕릉은 단정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로왕릉은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묘로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로왕은 서기 42년에 가락국을 세우고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과 혼인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당시 가야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교류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 숭선전에서 제례가 올려져 김해 지역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1500년 전 역사와 현재를 잇는 도보 여행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 시작해 수로왕릉까지 이어지는 약 두 시간의 도보 여정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길이다. 늦가을 붉게 물든 단풍 속에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천년의 역사를 따라 걷는 이 길은 김해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