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시간, 현대옻칠예술의 미학

경남도립미술관, 현대옻칠예술 특별전 개최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한 경남도립미술관은 2025년 11월 14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1층과 2층 전시실 전관에서 특별기획전 《현대옻칠예술: 겹겹의 시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전통 공예의 영역에 머물던 옻칠이 현대미술의 독창적인 매체로 확장되는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경남 지역과 옻칠 문화의 역사적 연계
특히 이번 전시는 경남 창원의 다호리 고분군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기원전 2세기경 출토된 붓과 부채, 세형동검 검집에 남은 옻칠의 흔적은 옻칠이 단순한 장식을 넘어 방수와 보존의 실용적 기술이자 미학적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위에서 전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옻칠의 생명력과 현대적 재해석
옻나무 수액인 우루시올은 습기와 만나 단단히 굳으며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생명력을 지닌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깔이 깊어지고 은은한 광택을 내는 옻칠의 미학을 성파 스님을 비롯한 8인의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성파 스님의 예술 세계
1층 제1전시실에서는 조계종 종정이자 현대옻칠예술가인 성파 스님의 작품이 전시된다. 옻칠을 수행의 방편이자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도구로 삼는 그의 작품들은 전통 기법을 넘어선 현대적 조형 언어를 선보인다. 대표작 〈유동하는〉 시리즈는 옻과 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 에너지의 역동성을 표현하며, 〈태초에〉와 〈물속의 달〉은 우주의 근원과 명상의 신비를 담아 관람객에게 깊은 사색의 시간을 제공한다.
정직성 작가의 추상 회화
2층 2전시실에서는 정직성 작가가 자개와 옻칠을 결합해 추상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빛과 물질의 교차를 통해 입체적 공간감을 창출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형 요소를 융합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의 작품은 옻칠의 물성에 집중하게 하며 현대 미술과 전통 공예의 만남을 보여준다.
김미숙 작가의 내면 탐구
같은 공간에서 김미숙 작가는 옻칠의 반복적 층 쌓기를 통해 인간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옻칠의 부드럽고 단단한 질감은 감정의 결을 드러내며, 관람객에게 내면과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녀의 작품은 옻칠을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이영실 작가의 옻칠 민화
이영실 작가는 옻칠을 활용해 민화의 상징과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옻칠의 깊은 색감과 견고함이 민화의 해학적 도상에 무게감을 더하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조형미를 선보인다. 관람객은 친숙한 민화 속에서 옻칠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신정은 작가의 신앙과 치유
2층 3전시실에서는 신정은 작가가 신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구원과 치유의 메시지를 옻칠 작품에 담았다. 상처와 치유를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옻칠의 물성과 어우러져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관람객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유남권 작가의 지태칠 기법
유남권 작가는 종이를 꼬거나 겹쳐 형태를 만들고 옻칠을 입히는 지태칠 기법을 현대 회화로 발전시켰다. 반복적인 붓질과 노동의 흔적이 시간의 기록으로 남아, 작품에 묵직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그의 작업은 수행과 축적의 의미를 담아내며 시간의 무게를 체감하게 한다.
구은경 작가의 문과 경계
구은경 작가는 '문'을 주제로 현실과 비현실, 안과 밖의 경계를 탐구한다. 옻칠의 깊은 색감과 광택은 문 너머의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며, 관람객을 몽환적이고 사색적인 공간으로 이끈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과 또 다른 차원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이수진 작가의 삼베와 옻칠 실험
이수진 작가는 삼베 위에 옻칠을 더해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한 실험적 작품을 선보인다. 삼베와 옻칠의 결합은 입체적이고 건축적인 조형 공간을 창출하며, 옻칠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느림의 미학, 옻칠 예술의 깊이
이번 전시는 옻칠이 단순한 공예를 넘어 현대 예술의 중심에서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십 번의 칠과 건조, 갈아내기를 반복하며 완성되는 옻칠의 깊은 빛깔은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을 일깨운다. 올겨울,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겹겹이 쌓인 시간의 결을 따라 옻칠 예술이 전하는 묵직한 감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전시장 위치
경남도립미술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2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