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도서 봉사자, 시각장애인에 희망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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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도서 봉사자, 시각장애인에 희망의 목소리

녹음도서 봉사자, 시각장애인에 희망의 목소리

경남점자정보도서관의 작은 녹음실에서 ‘ON AIR’ 불빛이 켜지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울림이 시작된다. 소리 없는 활자가 누군가의 목소리로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녹음도서 봉사자들은 시각장애인의 일상과 학습을 목소리로 잇는 다리가 되어, 그들에게 ‘살만한 세상’을 들려주고 있다.

인내와 정성으로 완성하는 녹음도서

녹음도서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낭독자의 엄청난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 보통 1시간 분량의 녹음본을 만들기 위해 봉사자들은 최소 2시간 이상 마이크 앞에 머문다. 발음이 꼬이거나 목소리가 갈라지는 변수, 예상치 못한 잡음까지 모두 잡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30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는 약 한 달, 참여 횟수에 따라 두어 달이 걸리기도 한다.

18년째 봉사 중인 나경진 씨(67)는 녹음 전 미리 내용을 눈으로 훑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는 “소설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사투리까지 살려야 해서 진땀이 날 때도 많지만, 나를 믿고 들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톤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나 씨가 ‘정서’를 중심으로 녹음을 한다면, 김보현 씨(48)는 ‘기술의 정확성’을 책임진다. 연극인 출신으로 10년 경력의 김 씨는 숫자 읽기나 성별에 따른 목소리 구현 등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며 낭독에 임하고 있다.

마음을 울리는 낭독, 삶을 바꾸는 봉사

봉사자들에게 낭독은 단순한 읽기를 넘어 깊은 공감의 과정이다. 나경진 씨는 사부곡이나 아이를 잃은 엄마의 글을 읽을 때면 눈물이 터져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스스로를 다독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정갈한 문장을 읽으며 작가의 숨결을 느끼고, 이용자들에게 더 편안한 들을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인문학 서적이나 소설, 지역 소식지도 꾸준히 낭독하고 있다.

김보현 씨는 낭독 봉사를 통해 자신의 인생 항로를 새롭게 개척했다. 연극인으로서 목소리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시작한 봉사가 발음 교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언어치료학을 전공하게 했고, 현재는 언어치료사로 활동하며 시각장애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봉사로 시작한 일이 인생의 영역을 확장해 주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정보 복지의 필수 도구

시중에 오디오북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점자도서관의 녹음도서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일반 오디오북이 대중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면, 녹음도서는 시각장애인의 학습권과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필수 도구다. 특히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로 점자법을 익히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녹음도서는 유일한 선택지다.

경남점자정보도서관은 연간 약 6000부의 점자 및 녹음도서를 발행하며, 수익성이 없어 시장에서 외면받는 전공 서적, 요리책, 법령집 등을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한다. 또한 지역 소식지인 「경남공감」, 「창원시보」 등도 녹음해 시각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돕고 있다. 누리집 ‘점자네소리골’을 통해 매달 신규 녹음도서를 제공하며 정보 격차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한 녹음 봉사

경남점자정보도서관에는 현재 15명의 녹음 봉사자와 10명의 모니터링 봉사자가 활동 중이다. 표준어 사용이 가능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으며, 낭독 테스트와 사전 교육을 거쳐 정식 봉사자로 활동하게 된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꾸준함만 있다면 누구나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줄 수 있다.

나경진 씨는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봉사를 골라 했지만, 이제는 상대가 원하는 일을 먼저 한다”고 말하며, 봉사자들은 오늘도 읽기 까다로운 관보나 신문을 먼저 집어 든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은 살만하다’는 온기를 목소리에 실어 보내는 그들의 봉사 정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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