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보국에서 인재보국으로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는 관정 이종환 회장의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기업 활동으로 축적한 재산을 장학사업과 교육시설 건립에 내놓은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생가에는 안채와 사랑채인 회경당, 여러 개의 작은 대문과 창고로 사용되는 건물, 방문객이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안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 휘장을 착용한 이종환 회장의 모습이 전시돼 있으며, 작은 대문 앞에는 그의 조각상과 가르침을 새긴 글이 세워져 있다.
의령에서 시작된 도전의 삶
이종환 회장은 1923년 5월 25일 경남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서 광주 이씨 영재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마산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선진 문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겠다는 도전정신을 키웠다.
그는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메이지대학 경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일제의 학도병 징병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만주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종전을 맞아 귀국했다.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과 6·25전쟁의 참상을 지켜본 그는 고향에서 정미소를 운영하며 안정을 추구하는 길에 머물지 않았다. 산업을 일으켜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품고 서울로 향했다.
화학공업에 건 산업보국의 뜻
6·25전쟁 이후 국토와 산업 기반이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이종환 회장은 화학공업을 산업 발전의 초석으로 판단했다. 부족한 자본과 열악한 기술 환경을 딛고 1958년, 36세에 삼영화학공업을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꽃장판과 스펀지 등 생활에 필요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며 내수 기반을 다졌다. 이후 포장용 필름과 콘덴서용 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수출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생활용 플라스틱 제품에서 출발한 도전은 포장재와 전기·전자 산업에 필요한 필름 개발로 이어졌다. 제한된 자본과 기술 여건 속에서도 필요한 제품을 국내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1970년대에는 빠르게 늘어난 국내 전선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전선을 창업했다. 회사를 국내 3대 전선 제조업체로 키웠지만 경쟁사들의 견제로 사업을 접는 시련도 겪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내 유일의 애자 생산업체였던 고려애자공업을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육성했다. 초고압선 154킬로볼트와 초초고압선 765킬로볼트 개발을 추진하며 국내 전력 송배전 체계의 혁신에도 힘을 보탰다.
격변기를 관통한 기업가 정신
이종환 회장의 생애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이후의 혼란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개발 시기,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문턱으로 나아가던 과정과 맞닿아 있다.
그는 이 같은 격변 속에서 자립심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기업을 일궜다. 산업 현장에서는 생산 기반과 기술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기업 활동의 성과를 국가공동체와 나눠야 한다는 뜻도 놓지 않았다.
그의 기업가 정신 한편에는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 훌륭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인재강국론과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학사업으로 이어진 인재 육성
이종환 회장은 인재 양성에 관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을 통해 5천여 명에게 1천억 원 이상의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장학생들은 국내외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추가로 출연해 장학재단 기금을 1조 원 규모로 확충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으로 산업보국의 뜻을 넓힌 행보였다.
평소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았던 그는 2012년 서울대학교에 개인 재산 600억 원을 출연했다. 이 지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방형 첨단 관정도서관을 건립하는 기반이 됐다.
정부는 2009년 산업보국과 장학사업을 통한 국가적 공로를 인정해 이종환 회장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서울대학교는 2014년 열악한 여건 속에서 국내 화학산업을 개척하고 성장시킨 공적을 기려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고향에 남긴 나눔의 흔적
이종환 회장은 고향집을 복원하는 한편 복지마을 조성, 곽재우 장군 사당 정비, 지역 후학을 위한 장학금 지원에도 힘을 기울였다. 산업과 교육 분야에서 펼친 사회 환원의 뜻을 고향에서도 이어간 것이다.
생가에는 안채와 회경당 사랑채 사이를 잇는 작은 대문이 있다. 그 주변에는 오랜 수령을 짐작하게 하는 향나무가 서 있어 고택의 차분한 분위기를 더한다. 안채와 사랑채에서 관정헌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에도 별도의 작은 대문이 놓여 있다.
대문을 지나면 여러 정원수가 자리하고 분재가 진열된 공간이 이어진다. 작은 호수에는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 관정헌이 들어서 있다. 관정헌 주변 언덕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정자 둘레에도 식물과 분재가 배치돼 있다.
관정헌은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다. 생가를 찾을 때에는 현장의 출입 범위와 시설 관리 기준을 따라야 한다.
생가에 새겨진 삶의 기록
생가에는 이종환 회장의 송덕비와 비문이 세워져 있다. 비문에는 그가 생전에 송덕비 건립을 적극 만류했다는 내용과 함께, 산업 발전과 장학사업에 기울인 뜻을 기리고자 송덕비를 세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송덕비는 기업 경영과 기술 개발, 장학재단 설립과 교육 지원, 고향을 위한 나눔으로 이어진 그의 생애를 압축해 보여준다. 생가의 안채와 사랑채, 조각상, 관정헌, 송덕비를 따라가면 산업보국에서 인재 양성으로 확장된 활동의 흐름을 차례로 살펴볼 수 있다.
의령의 생가는 한 기업인의 출생지가 산업 발전과 교육 지원, 지역사회 환원의 기록을 함께 품은 장소로 남아 있다.
관정 이종환 회장 생가 위치
| 시설명 | 관정 이종환 회장 생가 |
|---|---|
| 소재지 |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소상로 504 |
| 주요 공간 | 안채, 회경당 사랑채, 정원, 관정헌, 조각상, 송덕비 |
| 관람 유의사항 | 관정헌은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