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머무는 안골포굴강의 시간여행

가을빛 머무는 안골포굴강의 시간여행
가을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오래된 길과 장소를 찾아 나서게 됩니다. 화려한 봄꽃이나 짙은 여름의 초록빛 풍경보다, 빛이 바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드러나는 곳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해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푸른 바다가 은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오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에 위치한 안골포굴강을 찾아가는 길은 단순한 나들이가 아닌, 오랜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안골포굴강은 바다와 마을이 맞닿은 곳에 자리해 겉으로는 크고 화려한 문화유산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낮게 쌓인 돌들이 남아 있고, 주변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바다가 펼쳐져 있어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이곳에 오래된 역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굴강을 바라보면,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석축의 곡선에서 세월의 깊은 흔적이 느껴집니다. 바닷물이 드나들고 배가 머물렀던 공간을 상상하는 순간, 평범해 보이던 풍경은 어느새 조선시대의 한 장면으로 변모합니다.
안골포굴강은 조선시대 군사시설의 일종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배나 고관의 배가 정박하고 물자를 싣고 내리거나 배를 수리하는 선박장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정면적은 1,022㎡에 이릅니다. 동쪽으로 약 20m의 입구가 있고, 남아 있는 석축은 약 47m 내외의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굴강 또는 굴항 유적이 여러 곳 있었으나 대부분 흔적만 남아 있는 반면, 안골포굴강은 일부 석축이 허물어졌음에도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해양 군사시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요한 바다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잔잔한 물결이 포구의 가장자리를 두드리지만, 수백 년 전 이곳에서는 배를 수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군사들의 목소리, 바다를 향해 출항하는 선박의 긴장감이 어우러져 당시의 풍경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1592년 한산도대첩 이후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안골포에 정박한 일본군 함대를 공격했던 안골포해전이 이 일대에서 벌어졌으며, 지금도 안골포 일대에는 당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여러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의 한가운데로 접어든 지금, 뜨겁던 햇살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여름 바다가 눈부신 청색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가을 바다는 차분하고 깊은 색으로 다가옵니다. 바람이 불면 바다 위 잔잔한 물결 사이로 햇살이 부서져 은빛 조각들이 반짝이며, 오래된 돌담 역시 바다와 함께 세월을 견뎌온 하나의 생명처럼 느껴집니다.
창원시가 소개하는 진해바다70리길은 진해수협에서 속천항, 행암항, 합포승전비, 명동, 제덕항, 영길마을을 지나 안골포굴강까지 이어지는 약 29.2km의 해안길로, 7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마지막 7구간인 안골포길은 영길운동장에서 무궁화공원을 지나 안골포굴강까지 약 5.3km 이어지며, 안골포해전의 역사 현장을 만나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가을날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오래된 돌담과 바다, 그리고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수백 년 전 누군가의 손으로 쌓아 올린 돌이 오늘날까지 남아 여행자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 그 자체로 낭만적인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안골포굴강은 조선시대 해양 군사시설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 장소이자, 안골포의 바다와 마을이 이어지는 공간이며, 진해바다70리길의 마지막에 만나는 조용한 쉼표 같은 곳입니다. 붉게 물드는 나뭇잎과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저녁 바다 위로 번지는 노을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이곳은 말없이 남아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서서히 깊어가는 가을, 진해바다70리길을 따라 안골포굴강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가을 바다와 역사, 마을과 시간이 함께 어우러진 그곳에서 어느새 우리의 마음에도 가을빛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을 것입니다.
진해안골포굴강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 5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