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머무는 통영 죽도

통영 앞바다의 조용한 섬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자리한 죽도는 화려한 관광시설보다 소박한 섬마을의 풍경과 고요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통영에는 570개의 섬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으며, 죽도 역시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통영 바다를 채우는 섬 가운데 하나다.
죽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약 18km 떨어져 있다. 거리만 보면 비교적 가까운 섬이지만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약 1시간 20분이 걸린다. 배가 섬에 가까워질수록 단정한 집과 잔잔한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게 꾸며진 관광지와는 다른, 오래된 섬마을 특유의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먼저 여행자를 맞는다.
대나무에서 전해진 섬 이름
죽도라는 지명은 섬에 대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의 배들이 죽도 앞바다를 지나다가 이곳의 대나무를 베어 병장기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이 화살 제작에 필요한 대나무를 많이 심은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유래가 전하지만 그 중심에는 모두 대나무가 있다. 죽도라는 두 글자에는 섬의 자연뿐 아니라 통영 앞바다가 간직한 역사까지 함께 담겨 있는 셈이다.
마을을 지키는 돌장승과 팽나무
마을회관을 지나면 돌장승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이 돌장승은 2019년 죽도 별신굿 행사 때 점안식을 거쳤으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부터 마을에 있던 나무 장승이 오랜 세월을 지나며 크게 낡자 새 돌장승을 세웠다.
돌장승 곁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진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긴 세월 동안 섬과 마을을 지켜본 나무는 독특한 생김새로 시선을 붙든다. 나무 위에는 배구공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 마을 주민들이 어린 시절 그 구멍을 향해 공을 던지며 놀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돌장승과 오래된 팽나무는 죽도의 생활사와 주민들의 기억을 함께 품은 상징적인 풍경이다. 바닷바람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 두 존재가 조용한 마을 입구에 묵직한 인상을 더한다.
옛 학교 터의 허밀청원
해안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뒤 언덕길을 오르면 ‘허밀청원’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허밀청원에는 묵은 마음을 비우고 맑고 둥근 마음만 가득 채워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곳은 과거 한산초등학교 죽도분교가 있던 학교 터다. 죽도분교는 1945년 문을 열어 섬 아이들의 배움터가 됐으며 1994년 폐교됐다. 이후 재개중소기업개발원이 연수원으로 활용하면서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교육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한때 학생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이제 재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교육 현장으로 관리되고 있다. 용도는 달라졌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출발을 돕는 장소라는 의미는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돌담길에는 학교가 운영되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죽도는 한때 고기가 많이 잡혀 ‘돈 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풍성했던 어장의 기억과 아이들의 웃음이 머물던 학교,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교육 공간이 한 섬 안에서 차곡차곡 연결된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은 돌탑
언덕에 오르면 푸른 바다와 섬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바다 위를 지나는 작은 배가 고요한 풍경에 움직임을 더한다. 서두르지 않고 잠시 머물러 바라보기에 알맞은 장면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죽도를 상징하는 돌탑이 높이 서 있다. 이 돌탑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돌탑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하늘을 향해 길게 솟은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태풍과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돌탑 주변에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오토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앞으로는 넓은 바다가 열리고 뒤로는 섬의 고요한 풍경이 이어진다. 죽도의 차분한 분위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해안 산책로와 섬 둘레길
죽도에는 섬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둘레길과 바닷가 산책로가 있다. 다만 둘레길 일부는 인적이 드물고 풀이 우거진 구간이 있어 현장 상태를 살피며 이동할 필요가 있다.
마을 쪽 바닷가 산책로에서는 잔잔하게 이어지는 파도 소리와 섬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눈앞에는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지고, 복잡한 시설이나 요란한 볼거리 대신 포구와 해안의 평온한 풍경이 이어진다.
죽도의 매력은 무엇을 많이 보는 데 있기보다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섬의 시간을 따라가는 데 있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돌장승과 팽나무, 옛 학교 터와 돌탑, 해안 산책로를 차례로 둘러보면 섬마을이 간직한 여러 시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낚시와 남해안 별신굿
죽도는 낚시인들이 찾는 섬으로도 알려져 있다. 벵에돔이 많이 잡히는 시기에는 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섬을 찾는다고 전해진다. 조용한 포구와 바다를 배경으로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죽도가 지닌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2년에 한 번 ‘남해안 별신굿’ 공연이 열린다고 마을 관계자가 전했다. 남해안 별신굿은 오랫동안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온 행사다. 2019년 돌장승 점안식 역시 죽도 별신굿 행사 때 진행됐다. 주민들의 삶과 바다에 대한 염원이 이어지는 전통문화라는 점에서 죽도의 역사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화려하지 않아 오래 남는 풍경
통영에는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섬이 많지만 죽도는 조용하기 때문에 더욱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눈길을 끄는 대규모 시설이나 화려한 볼거리보다 주민들의 생활이 이어지는 마을과 오래된 나무, 돌담, 잔잔한 바다가 섬의 중심을 이룬다.
포구에 닿을 때 보이는 정겨운 마을, 입구를 지키는 돌장승과 300년 넘은 팽나무, 배움터에서 재기 교육의 장으로 변한 옛 죽도분교, 바다를 내려다보는 돌탑이 하나의 길 위에서 이어진다. 파도 소리와 바람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죽도가 품어온 역사와 생활의 결이 차분하게 드러난다.
통영 한산면 죽도는 서두르지 않아야 제대로 보이는 섬이다. 조용한 길을 걷고 푸른 바다 앞에 잠시 머무는 단순한 시간이 이곳에서는 여행의 중심이 된다.
장소 정보
| 장소 | 죽도 |
|---|---|
|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산34 |
| 이동 |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로 약 1시간 20분 |
| 주요 풍경 | 돌장승, 수령 300년 이상으로 알려진 팽나무, 허밀청원, 옛 죽도분교 터, 돌탑, 오토캠핑장, 둘레길, 해안 산책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