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강이 만난 첫 승전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기강
경남 의령의 기강 전적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다. 기강은 과거에 거름강 또는 갈림강으로도 불렸다. 두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넓은 수역은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처음으로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형과 당시 의병이 활용한 전술의 관계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남강이 들어와 합류한다. 남강은 이 지점에서 낙동강과 만나며, 기강 나루는 두 강이 합쳐지는 넓은 수역에서 낙동강을 따라 조금 올라간 곳에 있었다.
기강 전적지는 두 강의 합류 지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왜군의 수송을 막았던 곽재우 의병의 첫 전투지이자 첫 전승지다.
왜군의 보급로를 끊은 의병 전술
1592년 4월 13일 부산 앞바다로 침입한 왜군은 세 갈래의 북상 경로를 따라 한양으로 주력 부대를 진격시켰다. 왜군은 전방 부대에 군수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수송로로 낙동강을 이용했다.
왜군 수송선의 움직임을 파악한 곽재우 장군은 1592년 5월 4일과 6일 심대승 휘하의 장졸을 이끌고 기강 주변에 매복했다. 의병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왜선을 공격해 첫 전투에서 3척, 이어진 전투에서 11척을 격퇴했다.
의병은 강 속에 목장이라 부르는 나무 말뚝을 박아 왜선의 진로를 방해했다. 배가 말뚝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강변에 숨어 있던 병력이 기습하는 방식이었다. 강의 흐름과 주변 지형을 이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먼저 제한한 뒤 공격하는 전술이었다.
곽재우는 당시 의병 10여 명을 이끌고 기강 일대를 오르내리며 보급 물자와 약품을 운반하던 왜선 14척을 공격해 물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곽재우가 치른 첫 전투이자 조선의 첫 승리로 설명된다. 이순신 장군이 경남 거제시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두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후방 수송로에서 이어진 의병의 활동은 전방으로 진격한 왜군 주력 부대의 전쟁 수행에 큰 지장을 줬다. 곽재우는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의령을 시작으로 창녕과 합천, 성주 등에서 왜군을 물리치며 공을 세웠다.
두 충절을 기리는 의령 쌍절각
기강 전적지와 관련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의령 쌍절각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각은 충신이나 효자, 열녀처럼 훌륭한 인물의 행적과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을 뜻한다.
손인갑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장이 됐다. 이후 성주와 무계, 현풍, 초계 등에서 전투를 치르며 공을 세웠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동래부사에 임명됐다.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손약해는 남은 병사들을 모아 전쟁터로 나섰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다.
쌍절각이라는 이름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손인갑과 손약해 부자의 충절을 함께 기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쌍절각은 조선 광해군 1년인 1609년 손인갑의 후손들이 살던 의령군 봉수면 신현리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1943년 5월 임진왜란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재의 기강 일대로 옮겨졌다.
건물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운 구조다. 민흘림기둥은 아래쪽을 굵게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의 기둥을 가리킨다. 쌍절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올린 기와집으로 조성됐다.
정면이 두 칸으로 나뉜 내부에는 두 개의 비문이 보호돼 있다. 건물 안에서는 비석의 형태와 비석을 받치는 받침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외부에서는 맞배지붕과 기둥의 배열, 양쪽 측면으로 이어지는 단정한 건물 구성이 드러난다.
곽재우의 전공을 새긴 보덕각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인 의령 보덕각은 망우당 곽재우의 정려기와 비를 보호하는 건물이다. 곽재우에 대한 정려는 조선 영조 15년인 1739년에 내려졌다. 이후 조선 정조 9년인 1785년, 그의 전공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승전지인 기강에 보덕각과 비가 세워졌다.
보덕각에 보존된 정려기에는 곽재우의 일대기가 기록돼 있다. 비의 앞면에는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펼친 의병 활동과 생애가 담겨 있다. 보덕 불망비는 후세 사람들이 그의 덕을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는 뜻이다.
보덕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인 건물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석을 보호하는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갖췄다. 대문 안으로 들어선 공간에서는 비각과 주변 배치를 살필 수 있으며, 외부에서는 지붕과 기둥으로 둘러싸인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보덕각은 곽재우의 첫 승전과 이후 의병 활동을 기록으로 전하는 공간이며, 쌍절각은 손인갑과 손약해 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공간이다. 두 건물은 서로 기리는 인물이 다르지만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활동과 희생을 한자리에서 되새기게 한다.
강과 비각이 함께 전하는 역사
기강 일대에서 바라보면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형이 펼쳐진다. 경남 의령군 쪽에서 강 건너 오른쪽은 함안군이고, 낙동강 건너 왼쪽은 창녕군에 해당한다. 함안군 산기슭에는 두 강이 합쳐지는 장소의 이름을 딴 합강정이 자리한다.
강물이 합쳐지는 공간과 나루의 위치를 함께 살피면 왜군이 낙동강을 이용해 물자를 운반했고, 의병이 기강 주변에 매복해 수송선을 공격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강 가운데 설치한 나무 말뚝과 강변의 복병을 결합한 전술은 기강의 수로와 지형을 이용한 대응이었다.
쌍절각과 보덕각 주변은 화려한 장식보다 비석과 건물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구성돼 있다. 두 비각은 강변의 전적지와 나란히 남아 당시 의병이 세운 전공과 충절을 각각 전한다. 도로변에는 보덕각과 쌍절각의 위치를 알리는 돌 표지가 세워져 있다.
이곳을 지나면 의령의 호국 의병의 숲과 낙동강 친수공원, 기강 나루 꽃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이어진다. 전적지와 문화유산, 두 강이 만나는 자연 지형이 가까운 구역에 모여 있어 기강의 역사적 의미를 공간의 흐름에 따라 확인할 수 있다.
쌍절각과 보덕각 장소 정보
| 구분 | 소재지 | 주요 내용 |
|---|---|---|
| 쌍절각 |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기강로 383 | 손인갑과 손약해 부자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 |
| 보덕각 |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기강로 379 | 망우당 곽재우의 정려기와 비를 보호하는 건물 |
두 건물은 기강 전적지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을 기념한다. 쌍절각에서는 손인갑과 손약해 부자의 충절을, 보덕각에서는 곽재우의 전공과 의병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기강의 지형까지 함께 살피면 이곳에서 첫 승전이 가능했던 배경과 임진왜란기 의병 활동의 의미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