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빛에 담긴 장인의 시간

통영 나전칠기의 뿌리
2026년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공개행사가 통제영 역사홍보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보유자 박재성의 작품과 나전칠기 제작 재료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통영 나전칠기의 역사는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시작된다. 당시 군수품을 만들던 12공방에는 전국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장인들이 모였다. 이들이 자개와 옻칠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통영은 오랜 세월 나전칠기로 이름난 공예 도시로 자리 잡았다.
통영의 나전칠기는 조개껍데기의 빛과 장인의 정교한 손길, 여러 차례의 옻칠이 만나 완성되는 전통 공예다. 이번 공개행사는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제작에 쓰이는 재료와 주요 기법까지 보여주며 그 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나전장이 하는 일
나전장이라는 명칭은 조개껍데기인 자개를 가공해 목기나 여러 기물에 붙이고 다채로운 문양을 꾸미는 전통 공예 기술 또는 그 기술을 지닌 장인을 뜻한다.
나전칠기 제작은 단순히 자개를 물건에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양을 설계하고 자개를 가공한 뒤 옻칠과 표면 정리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장인의 집중력과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 복질과 문양 기획
전복껍데기와 소라껍데기 등을 정밀하게 갈아 얇은 자개판인 색패를 만들고 작품에 들어갈 문양을 구상한다. - 자개 오리기
실톱이나 칼을 이용해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자르거나 나비, 꽃, 십장생을 비롯한 여러 형태로 정교하게 오려낸다. - 자개 붙이기
아교나 물고기 부레로 만든 풀인 어교 등을 사용해 목기 바탕 위에 자개 조각을 하나씩 붙인다. - 옻칠과 칠긁기
자개를 붙인 표면에 옻칠을 여러 차례 덧입힌다. 이후 자개 위를 덮은 옻칠을 조심스럽게 긁거나 맷돌과 사포로 갈아내 자개 본래의 영롱한 빛을 드러낸다.
자개를 다듬고 붙이는 과정과 옻칠을 말리고 다시 표면을 정리하는 과정이 거듭되면서 나전칠기 특유의 깊은 빛이 나타난다.
끊음질과 줄음질
나전칠기에 쓰이는 대표적인 자개 가공 기법은 끊음질과 줄음질로 나뉜다. 두 기법은 자개를 다루는 방식과 표현할 수 있는 문양에서 차이를 보인다.
| 기법 | 작업 방식 | 주요 표현 |
|---|---|---|
| 끊음질 | 자개를 실처럼 가늘고 길게 자른 뒤 칼끝으로 조금씩 끊어 붙인다. | 직선과 곡선, 격자처럼 세밀하고 반복적인 문양을 표현한다. |
| 줄음질 | 자개 위에 원하는 문양을 그리고 실톱으로 형태를 통째로 오려 붙인다. | 꽃과 새, 인물 등 구체적인 형상을 나타낸다. |
끊음질은 통영 나전칠기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기법 가운데 하나다. 가늘게 자른 자개를 짧게 끊어가며 이어 붙이기 때문에 섬세한 선과 촘촘한 구성을 구현할 수 있다. 줄음질은 그려 놓은 형태에 맞춰 자개를 오려내므로 꽃이나 새와 같은 형상을 한 덩어리의 문양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기법을 알고 작품을 바라볼 때 문양이 만들어진 방식을 한층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작은 자개 조각이 이어져 선과 면을 이루고, 서로 다른 형태가 모여 전체 문양을 완성하는 구조가 작품마다 드러났다.
달항아리에 피어난 자개
전시 작품 가운데 달항아리의 곡면에 부처상과 대나무를 표현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둥근 항아리 표면 위에 자리한 부처상의 푸근한 미소와 대나무의 생동감이 자개 특유의 빛깔과 함께 나타났다.
평평하지 않은 달항아리의 곡선을 따라 인물과 식물의 형태가 이어졌고, 조명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자개 표면의 색채와 광택도 달라졌다. 부처상과 대나무의 세부 표현은 자개를 세밀하게 다루는 나전장의 기술을 보여줬다.
완성된 문양 뒤에는 자개 한 조각을 다듬고, 옻칠을 말리고, 표면을 긁어내는 반복의 시간이 쌓여 있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은 조각을 빈틈없이 배치한 흔적과 오랜 시간 이어진 장인의 집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된 자개의 여러 빛
통제영 역사홍보관 전시실 입구에는 작품 제작에 사용하는 재료도 함께 전시됐다. 나전칠기에는 빛깔과 질감이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조개껍데기가 사용된다. 전시장에서는 청패, 색패, 진주패, 야광패, 흑진주패 등 장인이 작업하기 편하도록 일정한 두께로 가공하고 분류한 표본판을 볼 수 있었다.
- 청패
- 색패
- 진주패
- 야광패
- 흑진주패
종류별 자개는 색과 광택에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조개껍데기가 일정한 두께의 자개판으로 다듬어진 모습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가 전통 공예의 핵심 소재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줬다. 완성품과 재료를 한 공간에서 비교할 수 있어 작품 속 빛깔이 어떤 자개에서 비롯됐는지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됐다.
세대를 잇는 통영의 공예
이번 국가무형유산 나전장 공개행사는 통영 나전칠기의 역사와 제작 과정, 대표 기법, 재료의 특성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관람객들은 결과물의 화려함뿐 아니라 설계부터 자개 가공, 부착, 옻칠, 표면 정리에 이르는 장인의 작업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실에는 자개가 빛을 받을 때마다 색을 달리하는 작품들이 놓였고, 세밀한 문양을 가까이에서 살피는 관람객들의 시선이 이어졌다. 통영의 바다에서 연상되는 조개껍데기의 빛은 장인의 손을 거쳐 목기와 항아리 위에서 새로운 문양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의 12공방에서 발전한 기술은 오늘날 국가무형유산 나전장의 작품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통제영 역사홍보관에서 열린 공개행사는 세대를 거쳐 전승된 통영 나전칠기의 정교함과 장인 정신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전시로 마련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