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빚은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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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빚은 두 얼굴

조선의 분청사기와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와당이 한 전시장에서 만난다. 밀양시립박물관 특별기획전 ‘분청·와당’은 흙을 빚고 구워 만든 두 문화유산을 통해 시대별 제작 기술과 문양, 생활문화와 건축미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다.

도자기와 기와는 쓰임이 서로 다르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아름다움을 추구한 마음이 담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시는 유물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작 기법과 문양에 따라 구분해 서로 다른 시대의 미적 감각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 개요

전시명분청·와당
전시 기간2026년 9월 18일부터 11월 29일까지
전시 장소밀양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
소재지경상남도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밀양시립박물관·독립운동기념관
전시 구성1부 분청사기, 2부 와당

전시장에 들어서면 푸른빛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진열장과 여러 유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유물마다 제작 기법과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배치돼 도자기와 기와가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도 전시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조선의 자유로움을 담은 분청사기

1부에서는 조선시대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분청사기를 선보인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조선 전기에 독자적으로 발전한 도자기다. 회색빛 태토 위에 백토를 입히고 여러 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한 점이 특징이다.

명칭은 ‘분장회청사기’에서 유래했다. 고려청자가 정교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분청사기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소박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같은 형태의 그릇도 문양과 제작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인상을 드러낸다.

진열장에는 항아리와 병, 대접, 접시 등 여러 형태의 분청사기가 놓였다. 크기와 비례, 표면의 무늬가 조금씩 달라 작품을 하나씩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분청사기의 핵심은 일정한 형식 안에서도 장인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스러운 표정에 있다.

생활과 미감이 만난 분청사기 연적

전시 유물 가운데 분청사기 연적은 옛사람들의 생활과 미적 감각을 함께 보여준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사용할 물을 담아 두는 문방구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던 선비들의 생활에서 필요한 도구였다.

전시된 연적은 조선시대 유물로 울산 울주군에서 출토됐으며 울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연꽃 봉오리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에 인화기법으로 무늬를 넣었다. 작은 생활 도구에도 섬세한 장식을 더한 당시의 제작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상감기법에 새긴 세밀한 무늬

상감기법은 분청사기에 남은 고려청자의 전통을 잘 보여주는 장식법이다.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긴 뒤 파낸 부분에 백토나 흑토를 채워 문양을 드러낸다.

전시장에서는 상감기법으로 만든 항아리와 병, 대접 등을 볼 수 있다. 회색 바탕과 밝은 문양의 대비가 뚜렷하고, 선과 기하학적 무늬가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표면을 파고 다시 흙을 채우는 제작 과정의 정교함도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인화기법이 만든 반복과 질서

인화기법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그릇 표면에 반복해서 찍은 뒤 백토를 채워 문양을 선명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작은 점과 꽃무늬, 기하학적 문양이 일정하게 이어지며 독특한 장식 효과를 낸다.

그릇 표면을 가득 채운 반복 무늬는 화려하면서도 질서 있는 인상을 준다. 같은 도장을 사용했더라도 손으로 찍고 완성한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가 생겨 기계적인 반복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변화가 나타난다.

박지기법의 선명한 대비

박지기법은 그릇 표면에 백토를 바르고 문양을 그린 다음, 무늬 주변의 백토를 긁어내 회색 태토를 드러내는 장식법이다. 밝은 백토와 어두운 바탕이 대비되면서 문양의 윤곽이 한층 분명해진다.

꽃과 잎 같은 자연 소재는 단순하면서도 과감하게 표현됐다. 세밀하게 다듬은 무늬와는 다른 소박하고 힘 있는 조형미가 특징이다. 관련 작품 옆에는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마련돼 있다.

귀얄기법에 남은 붓의 움직임

귀얄기법은 넓은 붓인 귀얄로 그릇 표면에 백토를 바르는 방식이다. 붓을 움직인 방향과 속도에 따라 흔적이 달라지며, 그 자국 자체가 장식이 된다.

인화기법이 반복되는 무늬를 보여준다면 귀얄기법은 한 번의 붓질에서 생기는 자유로운 선과 색의 변화를 강조한다. 표면에 남은 거친 붓 자국은 장인의 움직임을 직접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분청사기 귀얄무늬 사발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선명하다. 일정한 무늬를 정교하게 새기지 않았지만 백토를 바르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만든다. 같은 기법으로 제작된 사발도 붓질과 색의 변화가 모두 같지 않다.

전통 분청과 현대 조형의 연결

전시에는 전통 분청사기뿐 아니라 분청의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함께 놓였다. 회화와 도자 조형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전통적인 재료와 표현이 오늘날의 예술로 이어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조선 전기에 발전한 분청사기는 왕실과 관청의 그릇뿐 아니라 일반 백성의 생활과도 연결된 실용적인 용기였다. 물과 음식을 담는 일상적인 그릇에 여러 장식법을 적용했다는 점은 당시 도자문화의 폭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문양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붓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문화와 미적 취향이 함께 담겨 있다.

지붕 끝에서 만나는 와당

2부는 전통 건축문화의 한 부분인 와당을 조명한다. 와당은 기와지붕 끝을 마감하고 장식하는 기와다. 지붕 끝을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장식적 역할을 함께 맡았다.

전시장에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와당이 시대별로 배치됐다. 푸른빛을 활용한 분청사기 공간과 달리 와당 공간은 밝은 배경을 중심으로 구성돼 기와의 윤곽과 문양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꽃과 동물,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와당은 지붕 끝의 작은 건축 부재에도 기술과 예술이 함께 담겼음을 보여준다.

고구려 와당의 힘찬 조형

고구려 와당은 힘 있는 선과 독창적인 조형미가 특징이다. 전시장에는 붉은빛을 띠는 둥근 와당이 나란히 놓였고, 표면에는 꽃과 기하학적 형태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고구려는 초기 중국 한나라와 낙랑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독자적인 문양을 발전시켰다. 전시된 와당은 크기와 문양 구성이 조금씩 다르며, 선과 무늬에서 역동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가까이에서 보면 건축 부재이면서도 독립된 조형 작품과 같은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백제 와당의 우아한 곡선

백제 와당은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문양으로 구분된다. 중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양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무늬는 연꽃을 표현한 연화문이다. 둥글게 펼쳐진 꽃잎은 균형 잡힌 구성을 이루며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든다. 같은 연꽃무늬라도 꽃잎의 크기와 배열, 표현 방식이 서로 달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일부가 마모된 유물에도 당시 장인들의 섬세한 조형 감각이 남아 있다.

신라 와당의 독창적 변화

신라 와당은 초기 고구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여러 문양이 사용됐으며 점차 장식이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둥근 와당에 새겨진 꽃잎의 배열과 세부 문양을 살펴보면 같은 연화문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표현 방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와당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면 세 나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킨 흐름이 드러난다.

사자무늬와 연화문 수막새

와당 전시에서 주목할 유물로는 사자무늬 수막새와 연화문 수막새가 있다. 수막새는 지붕의 수키와 끝에 사용돼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 지붕 끝을 장식하는 기와다.

사자무늬 수막새는 사자의 얼굴을 문양으로 형상화해 힘찬 생동감을 보여준다. 연화문 수막새는 연꽃을 중심으로 무늬를 구성했다. 연꽃은 불교문화와 깊이 관련된 소재로 고대 건축 장식에 널리 쓰였다.

둥근 수막새 외에도 기와의 곡선이 남은 유물과 일부가 파손된 기와 조각이 함께 전시된다. 이들 유물은 기와가 실제 지붕에서 어떤 형태로 사용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유물별 명칭과 특징은 전시장 안내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흙으로 이어진 도자문화와 건축문화

‘분청·와당’은 흙이라는 공통 재료에서 출발한 두 문화유산을 연결한다.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장인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생활문화를 보여주고, 와당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건축 기술과 문양의 변화를 드러낸다.

상감과 인화, 박지, 귀얄기법을 차례로 비교하면 분청사기 표면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어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와당을 살펴보면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 선과 꽃잎, 장식 구성을 확인하게 된다.

푸른빛 진열장 속 도자기와 세월의 흔적이 남은 와당은 서로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모두 장인의 기술과 미감을 품고 있다. 전시는 과거의 생활용기와 건축 부재가 오늘날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으로 읽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밀양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2026년 1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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