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에 펼쳐진 다정한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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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 펼쳐진 다정한 영토

여성의 삶과 몸, 자연과 욕망을 아홉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기획전 ‘다정한 영토’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추상회화와 사진, 자수, 비누 조각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들이 기원과 생동, 투쟁과 유혹이라는 네 개의 영토를 구성한다.

2026년 10월 8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 이어진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 전시인 데다 상설전시관과 체험 공간, 수유실까지 갖춰 개인 관람은 물론 가족 문화 나들이 장소로도 살펴볼 만하다.

네 개의 영토로 만나는 여성 작가들

‘다정한 영토’에는 이성자, 홍승혜, 정정엽, 장파, 장지아, 김옥선, 박미나, 신미경, 함경아 등 아홉 명의 여성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는 각 작가가 구축한 세계를 기원, 생동, 투쟁, 유혹이라는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눠 보여준다.

작품들이 다루는 범위는 넓다. 자연과 도시, 우주를 연상시키는 추상적 이미지에서 출발해 작은 생명과 노동, 여성의 신체와 욕망,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는 존재, 분단과 검열의 문제까지 이어진다. 모든 작품을 하나의 결론으로 묶기보다 서로 다른 시선이 어떻게 연결되고 충돌하는지 살펴보도록 구성한 전시다.

전시 공간은 1층과 2층에 걸쳐 이어진다. 관람객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 차분한 전시실 안에서는 선명한 색채와 낯선 신체 이미지, 정교한 재료 표현이 교차하며 작품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기원의 영토

1전시실에서 시작되는 기원의 영토에서는 이성자의 추상회화와 홍승혜의 기하학적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은 구체적인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형태와 색,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이성자의 작품은 자연과 도시를 지나 우주와 은하수로 확장되는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화면을 채운 색과 형태는 현실의 풍경을 직접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광활한 공간과 별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경남을 대표하는 예술가인 이성자의 우주와 은하수 연작도 이 영역의 흐름을 이룬다.

홍승혜는 픽셀을 활용해 여러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어 낸다. 작은 단위가 반복되고 결합하면서 새로운 이미지와 질서가 형성된다. 정해진 해석을 따라가기보다 관람객이 화면의 리듬과 색채를 각자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생동하는 영토

생동하는 영토에서는 평소 쉽게 지나치는 작은 생명과 여성의 몸이 화면의 중심에 놓인다. 정정엽은 곡식과 씨앗, 나방처럼 작고 익숙한 존재를 통해 생명과 노동의 의미를 드러낸다. 일상에서는 눈길을 끌지 못했던 대상들이 작품 안에서는 생존과 순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존재가 된다.

작품 옆 설명과 전시 리플릿을 함께 살피면 소재와 주제 사이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씨앗과 곡식은 단순한 정물에 머무르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힘과 반복되는 노동을 생각하게 한다.

장파는 여성의 신체를 강렬하고 때로는 기괴한 형태로 표현한다. 익숙한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난 신체 이미지가 전시실의 시선을 붙잡는다.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을 통해 여성의 몸이 어떤 기준으로 규정돼 왔는지 질문하고, 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투쟁하는 영토

투쟁하는 영토에서는 신체와 욕망, 금기, 이주와 정착처럼 사회와 개인이 맞닿는 문제를 다룬다. 장지아의 작품은 신체와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일부 작품은 표현 수위와 내용이 강렬해 전시장 입구에 관람 주의 안내가 마련돼 있다.

단정하게 머리를 땋은 소녀의 모습과 작품 전체가 전달하는 긴장감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친숙하고 평온해 보이는 외형 뒤로 신체와 금기를 둘러싼 불편한 질문이 이어지면서 관람객이 작품 앞에 잠시 머물게 한다.

김옥선의 사진에는 이주여성과 제주에 옮겨 심어진 나무가 등장한다. 사람과 나무는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원래 자리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놓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진은 새로운 장소에서 삶을 이어가는 존재들의 모습과 그들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나란히 보여준다.

유혹하는 영토

2전시실의 유혹하는 영토에서는 색과 재료가 주는 감각적 즐거움이 두드러진다. 박미나는 2005년 코리아나 화장품의 아이섀도와 립스틱 색상을 활용한 작업을 선보인다. 벽면을 채운 다채로운 색들은 화장품이라는 일상적 소재가 회화의 색채 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미경은 비누로 도자기를 재현한다. 씻을 때 사용하는 익숙하고 쉽게 닳는 재료가 단단한 도자기의 외형을 갖추면서 재료와 형태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겉모습만으로는 도자기처럼 보이지만 작품의 물성을 확인하는 순간 비누라는 재료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의미가 드러난다.

함경아의 자수 작품은 촘촘한 바느질과 섬세한 표현으로 전시실의 분위기를 바꾼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까지 어우러지며 자수의 표면과 색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정교한 화면 뒤에는 분단과 검열, 노동의 의미가 놓여 있어 시각적 아름다움과 작품이 품은 현실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이후 이어지는 관람

기획전을 모두 둘러본 뒤에는 미술관 1층 코스모스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이성자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상설전시관도 함께 관람할 수 있어 기획전과 작가의 예술세계를 연이어 살펴볼 수 있다.

아기와 동행하는 가족을 위한 수유실도 마련돼 있다. 건물 내부에서 층간 이동이 가능하고 휴식과 체험을 이어갈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도 일정을 구성하기 수월하다.

미술관 주변에는 영천강변 산책로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실내 전시 관람을 마친 뒤 강변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전시실 안에서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며 일상과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관람 정보

전시명다정한 영토 TENDER TERRITORY
전시 기간2026년 10월 8일부터 11월 22일까지
전시 장소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1전시실과 2전시실
미술관 위치경상남도 진주시 에나로128번길 14 충무공동 291
관람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 마감오후 5시 30분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공휴일 휴관 기준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 휴관
시설 문의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055-749-5898

연령별 관람료

대상기준개인 관람료
어른19세 이상 65세 미만2,000원
청소년 및 군인청소년은 13세 이상 18세 이하1,000원
어린이7세 이상 12세 이하500원
노인 및 유아노인은 65세 이상, 유아는 6세 이하무료

관람료 할인 대상

진주시민과 산청군민, 경남 가족 단위 관람객을 비롯해 남해안 남중권과 자매도시, 동주도시, 혁신도시 시군구민은 안내된 조건에 따라 관람료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18세 이하 자녀를 둔 두 자녀 이상 가정도 할인 대상에 포함된다. 적용 대상과 필요한 증빙서류는 방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구분50퍼센트 할인가
어른1,000원
청소년 및 군인500원
어린이250원

다정함과 강렬함이 공존하는 전시

‘다정한 영토’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작품만을 모은 전시가 아니다. 일부 작품은 낯설고 강렬하며 신체와 욕망, 금기처럼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직접 마주하게 한다. 다른 한편에는 우주를 연상시키는 추상회화와 풍부한 색채, 섬세한 자수처럼 시각적 즐거움을 전하는 작품도 자리한다.

서로 다른 세대와 재료, 표현 방식을 지닌 아홉 작가의 작품은 여성의 삶을 하나의 모습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작은 생명의 움직임부터 낯선 환경에서 이어지는 삶, 사회적 금기와 분단의 현실까지 각자의 영토가 이어지며 전시의 흐름을 만든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은 이번 기획전을 통해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과 관계, 노동과 사회를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주에서 날씨와 관계없이 관람할 수 있는 실내 전시를 찾는다면 네 개의 영토를 순서대로 걸으며 아홉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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