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끝 200년 효열각

Last Updated :
골목 끝 200년 효열각

경남 김해시 대성동의 오래된 주택가를 따라가면 분성산 아래 석축 위에 자리한 작은 정려각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허동엄의 효행과 부인 안동 권씨의 열행을 기리는 김해 효열각이다.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이 가야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이라면, 효열각은 한 가족에게 전해진 조선시대 이야기를 간직한 공간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200년 넘는 세월을 품은 비석과 건축물이 김해 구도심 한가운데 남아 있다.

분성산 아래 오래된 골목

효열각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낮은 기와집과 오래된 담장이 늘어서 있다. 도심과 맞닿은 골목이지만 길이 좁고 주변 건물이 낮아 한적한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해가 기울면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분성산 능선은 저녁 하늘 아래 짙은 윤곽을 드러낸다.

10월 초 김해는 한낮의 더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저녁부터 바람이 선선해지는 시기다. 골목 안으로 들어갈수록 차량과 도심의 소음은 줄어들고, 석축 위 팔작지붕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온다.

효열각은 단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주변보다 높은 석축 위에 세워져 존재감이 분명하다. 붉은 기둥과 홍살, 여러 겹으로 이어진 기와지붕이 단정한 인상을 만든다. 화려한 관광 시설과는 다른, 오래된 유적 특유의 무게가 골목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효행과 열행을 기린 정려각

현장 안내판에 따르면 효열각은 조선시대 인물 허동엄의 효행과 그의 부인 안동 권씨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는 충신과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리던 표창을 뜻한다.

허동엄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조모와 홀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며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모상을 당한 뒤에는 닷새 동안 보리가루로 연명하고, 이후 3년 동안 죽만 마셨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산골에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초종일 저녁 큰 범이 나타나 사흘 밤을 지키고, 시신을 운구하는 날에는 마을 어귀까지 따라갔다가 돌아갔다는 내용도 안내판에 기록돼 있다. 허동엄은 1774년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안동 권씨는 남편의 장례를 맞아 시신을 수습한 뒤 남편의 옷띠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이러한 행적을 남편을 향한 지조로 평가했다. 오늘날의 관점과는 시대적 배경이 다른 기록이지만, 효열각은 해당 인물들의 삶과 당시 사회의 가치관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역사 공간이다.

순조 8년인 1808년 두 사람의 행적이 나라에 알려지면서 정려가 내려졌고, 그 기록을 비문에 새겨 모신 곳이 현재의 효열각이다.

현판과 홍살에 담긴 의미

건물 정면에는 한자로 효열각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효와 열이라는 이름은 허동엄의 효행과 안동 권씨의 열행을 각각 가리킨다. 현판 아래에는 단청을 입힌 공포가 이어지고, 붉은 홍살이 건물 네 면을 둘러싸고 있다.

홍살 끝은 위를 향해 뾰족하게 뻗어 있다. 내부 출입을 제한하면서 정려각에 모신 비석을 보호하는 구조다. 관람객은 홍살 밖에서 건물과 비석을 살펴보게 된다.

가까이에서는 연꽃과 모란, 구름 문양이 겹겹이 표현된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녹색과 적색, 황금빛 계열의 단청이 조화를 이루며, 일부에는 칠이 벗겨지는 등 세월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저녁의 낮은 햇빛이 비스듬히 닿으면 공포 아래 음영이 깊어지고 단청의 색채도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란히 서 있는 두 비석

홍살 사이로 내부를 바라보면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한 비석에는 허동엄의 효행을 기리는 내용이, 다른 비석에는 부인 안동 권씨의 열행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검은빛을 띤 돌과 흰색 글씨가 대비를 이루며, 두 비석은 별도의 실내 전시관이 아닌 정려각 안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 왔다. 작은 건물 안에 놓인 두 비석은 효열각이 한 인물만이 아니라 부부의 행적을 함께 기리는 장소라는 점을 보여준다.

건물의 규모만 보면 잠시 지나치기 쉽지만, 안내판의 기록을 읽은 뒤에는 현판과 홍살, 비석이 서로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석축에서 바라보는 김해 구도심

효열각 주변에서는 김해 구도심의 낮은 건물과 기와지붕, 골목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 불빛을 함께 볼 수 있다. 멀리에는 분성산 능선이 이어진다. 맑은 가을날에는 시야가 트여 산과 도심의 경계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다.

해 질 무렵 하늘은 파란빛에서 자줏빛으로 천천히 바뀌고, 골목의 건물에는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효열각의 오래된 기와지붕과 현재의 주거지가 한 화면에 들어오면서, 역사 건축물이 오늘의 도시 안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정면에서는 붉은 홍살과 현판을 중심으로 단정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측면에서는 팔작지붕의 곡선과 처마가 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기와와 지붕선의 윤곽도 또렷해진다.

김해 역사 여행의 또 다른 결

김해의 대표적인 역사 여행지는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을 비롯한 가야 유적이다. 효열각은 이와 다른 조선시대의 생활사와 가족사를 보여준다. 왕과 고대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부모를 섬긴 아들과 남편을 잃은 부인의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효열각은 김해향교 인근에 있어 두 공간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김해향교를 살펴본 뒤 구도심 골목을 따라 효열각으로 이동하면 조선시대 교육 공간과 정려 문화를 한 흐름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주변의 김해읍성 북문과 동상동 거리, 수로왕릉을 연계하면 김해의 여러 시대를 차례로 살펴보는 도보 여행도 가능하다. 대규모 시설을 관람하는 방식보다 골목 사이에 남은 역사 흔적을 천천히 확인하는 일정에 어울린다.

효열각 관람 정보

명칭효열각
위치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분성로 일대, 분성산 아래 구도심 골목
관람 방식외부 관람
입장료무료
관람 시간상시 관람 가능
주차인근 골목의 주차 공간이 협소해 도보 방문 권장

10월에는 해가 이른 저녁부터 빠르게 기울기 때문에 노을과 야간 골목 풍경을 함께 보려면 오후 5시 30분 무렵 도착하는 일정이 적합하다. 다만 일몰 시각은 날짜와 날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골목 폭이 넓지 않고 주민 생활 공간과 맞닿아 있으므로 차량보다는 도보 이동이 편리하다. 효열각과 함께 인근 담장과 구도심 골목을 살펴볼 수 있으며, 건물 내부보다 외부의 현판과 홍살, 단청, 비석을 중심으로 관람하게 된다.

조용히 이어지는 역사 공간

효열각은 대형 안내 시설이나 화려한 편의시설을 갖춘 관광지는 아니다. 대신 석축 위 작은 정려각과 두 개의 비석, 오래된 골목과 분성산 풍경이 한데 이어져 있다. 방문객이 많지 않은 저녁에는 골목을 오가는 주민들의 발걸음과 가로등 불빛 속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김해 효열각은 1808년 내려진 정려의 기록을 오늘의 구도심에 전하는 장소다. 가야 유적을 둘러본 뒤 김해의 조선시대 이야기까지 살펴보고 싶다면 김해향교와 함께 걸어볼 만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한 가족의 기록과 지역의 보존 노력이 맞닿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김해 역사 여행의 폭을 넓혀준다.

골목 끝 200년 효열각
골목 끝 200년 효열각
골목 끝 200년 효열각 | 경남진 : https://gyeongnamzine.com/10807
서울진 부산진 경기진 인천진 대구진 제주진 울산진 강원진 세종진 대전진 전북진 경남진 광주진 충남진 전남진 충북진 경북진 찐잡 모두진
경남진 © gyeongnamzine.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