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야고분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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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가야고분의 증언

110여 년 전 진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특별전 일제강점기 진주지역 고적 조사, 그 기록과 실상은 수정봉·옥봉고분군과 조산고분, 죽전고분군에 남겨진 조사 기록을 통해 이 질문을 짚는다.

전시가 주목하는 핵심은 단순히 어떤 유물이 출토됐는지에 그치지 않는다. 누가 진주의 고분을 조사했고, 어떤 관점으로 기록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이 빠졌는지를 함께 살펴보게 한다. 사라진 고분의 이름과 위치를 되짚는 작업은 지역의 국가유산과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낯익은 진주에 남은 낯선 기록

전시장에는 남강을 내려다보는 촉석루의 옛 모습과 가로수가 늘어선 신작로, 당시 자동차가 지나가는 거리, 오늘날과 다른 길과 마을이 표시된 옛 지도가 소개된다. 현재의 진주와 연결되는 풍경이지만, 사진과 지도 속 도시의 모습은 지금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1910년 세키노 다다시를 비롯한 일본인 조사자들은 진주의 수정봉·옥봉고분군을 조사했다. 이들은 무덤을 파고 현장을 촬영했으며 출토 유물을 기록했다. 당시 남겨진 사진에는 봉분 위에 여러 사람이 올라가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일부 인물은 군복이나 경찰복처럼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지만, 전시 자료만으로 정확한 신분은 확인되지 않는다.

사진은 고분의 형태와 조사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동시에 촬영자와 기록자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진에 담긴 장면뿐 아니라 누가 무엇을 기록했는지, 기록에서 빠진 내용은 무엇인지까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야 고분을 향한 식민사관의 시선

영상실에서는 조영제 전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녹화 해설을 통해 당시 고적 조사의 배경을 설명한다. 해설에서 다뤄지는 핵심 개념은 식민사관의 타율성론이다. 이는 한국의 역사가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외부 세력의 영향에 따라 전개됐다고 보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 아래 한반도 북부에서는 낙랑고분, 남부에서는 가야 고분에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고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 해석으로 이용됐다.

가야와 왜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과 일본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은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전시는 일제강점기 이전과 이후의 조사 기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기록이 생산된 시대적 배경과 조사 목적을 함께 살펴보도록 구성됐다.

우물 공사에서 발견된 조산고분

1913년 7월 3일 진주에서 우물을 파던 중 커다란 무덤이 발견됐다. 전시 자료에는 발견자로 방대영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어 1913년 8월 9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것으로 소개된 기사 천년 고분의 발견도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다. 해당 기사는 고분 발견 사실을 전하는 기록인 동시에, 어떤 시대에 어느 주체가 발행한 신문인지까지 고려해 읽어야 하는 자료다.

발견된 무덤은 지름이 20m를 넘는 조산고분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는 과정에서 지상 흔적이 사라졌고, 이후 중안동고분 또는 상봉동고분이라는 이름이 혼용됐다. 고분의 실체뿐 아니라 본래 이름까지 희미해진 것이다.

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은 17세기 진양지와 19세기 진주성도, 여러 옛 지도와 신문 기록을 서로 대조했다. 그 결과 해당 무덤의 본래 이름이 조산고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산은 사람이 만든 산이라는 뜻으로, 옛 진주 사람들은 이미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금귀걸이를 비롯한 여러 유물도 소개된다. 유물은 고분의 조성 시기와 성격을 살피는 자료지만, 무덤에 묻힌 인물의 구체적인 삶까지 모두 전해주지는 않는다. 조사 시기에 따라 유물 목록과 도면이 달라진 사례도 제시된다. 기록은 과거를 복원하는 중요한 근거이지만 언제나 완전한 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사람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은 1914년

1914년 도리이 류조 조사단은 고분뿐 아니라 조선인의 신체도 측정했다. 전시에는 백정을 따로 측정했다는 내용도 제시된다. 이는 당시 조사가 유적과 유물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의 신체와 신분을 구분해 기록하는 데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초가집 앞에 선 가족의 사진도 남아 있다. 사진 속 마당에는 가죽이 펼쳐져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조사 자료 속 대상이기 이전에 진주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던 사람들이었다. 전시실의 빛바랜 사진은 조사자의 기록과 그 안에 포착된 주민들의 삶을 한 화면에 보여준다.

같은 해인 1914년 10월에는 옥봉에서 또 다른 무덤이 발견됐다. 농민들이 봉토를 파던 중 유물을 찾아낸 사건이었다. 전시장에서는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인공지능 재현 장면도 제시한다. 오래된 사진과 재현 화면이 나란히 놓이면서 당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재현 장면은 역사 기록 그 자체가 아니다.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과 이해를 돕기 위해 재구성한 장면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

죽전고분군에 흐른 110여 년

전시 후반부에서는 1914년과 1918년에 촬영된 죽전고분군 사진을 2026년 현재 모습과 비교한다. 옛 사진에는 구릉 아래 초가집이 모여 있는 풍경이 담겼다. 현재는 나무와 풀 사이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야 할 만큼 주변 모습이 달라졌다.

110여 년의 시간은 고분의 외형뿐 아니라 지역에 남은 기억까지 바꿨다. 한때 분명한 이름으로 불리던 무덤이 도시 변화 속에서 사라지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과정은 국가유산을 조사하고 보존하며 정확한 명칭을 되찾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유물을 보는 일과 유물이 발견·조사·기록된 과정을 살피는 일은 분리될 수 없다. 이번 특별전은 진주의 가야 고분을 둘러싼 자료를 한자리에 모아 일제강점기 조사의 실상과 기록의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또한 현재 남아 있는 국가유산을 바라볼 때 발견자와 조사자, 기록의 작성 배경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질문을 남긴다.

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관람 정보

전시명일제강점기 진주지역 고적 조사, 그 기록과 실상
전시 기간2026년 10월 21일부터 2027년 2월 26일까지
장소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 경상국립대학교 가좌캠퍼스 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특별전시실
관람 시간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관주말 및 공휴일
입장료무료
주차경상국립대학교 캠퍼스 내 주차장 이용, 카드 전용
관람 문의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055-772-0607
박물관 문의경상국립대학교박물관 055-77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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