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조할매, 작가가 되다

평범한 삶이 마을의 기록으로
거창군 마을만들기 성과공유회가 2026년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거창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열렸다. 행사장은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거함대로 3372-53에 자리한다.
이번 성과공유회는 주민과 마을활동가, 완료지구 관계자 등이 모여 마을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돌아보고, 주민들이 함께 추진한 활동과 성과를 나누는 자리로 마련됐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경험이 마을 공동체의 기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행사 전반에 담겼다.
성과공유회에서 특히 주목받은 순서는 2026 마을 프로그램 ‘나도 작가다’에 참여한 가조 할머니들의 북콘서트였다. 평범한 농촌의 하루를 살아온 어르신들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를 작품 도록으로 완성해 관객 앞에서 소개했다.
그림일기와 가방 전달
오전 개막식에서는 마을활동가와 가조면 할머니 작가가 이홍기 거창군수에게 ‘나도 작가다’ 작품 도록인 가조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와 가방 기념품을 전달했다. 이어 마을활동가 김미정 씨가 곽영자 작가의 그림일기 가운데 ‘여자의 일생’을 낭독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가조할매 북콘서트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덟 명 가운데 다섯 명의 작가가 참석했다. 무대에 오른 작가들은 환한 웃음과 수줍은 표정으로 관객을 맞았고, 자신의 삶을 재치 있는 말솜씨로 들려줬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이어졌으며, 무거운 기억을 꺼내는 대목에서는 참석자들이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북콘서트는 거창군마을만들기 사무국장의 인사로 문을 열었다. 프로그램은 지난해 스케치북 작업에 이어 올해 그림일기장 제작으로 확장됐다. 어르신들은 익숙한 농촌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자의 언어와 그림으로 하루의 모습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이어진 작가 도전
가조 할머니들의 작가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김미정 마을활동가의 지도 아래 어르신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도록으로 엮었다. 완성된 작품을 북콘서트 무대에서 직접 들려주면서 창작 과정과 삶의 기억도 관객과 나눴다.
수업이 열리는 날이면 유모차를 밀고 참여한 어르신도 있었다. 일기장을 받은 뒤 마음속 이야기를 밤새 써 내려가 일주일 만에 한 권을 채운 사례도 소개됐다. 종이가 아까워 신문지나 달력 뒷면에 글을 적어 온 참여자도 있었다.
도록에는 그림과 짧은 글을 중심으로 일부 작품이 실렸지만, 넉 달 동안 이어진 수업에서는 지면에 모두 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어르신들은 오랜 세월 간직해 온 기억부터 집 앞의 꽃과 나무, 가족, 농촌의 풍경처럼 가까운 일상까지 폭넓게 기록했다.
글쓰기와 그림은 과거의 아픔만 되짚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재의 작고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비가 내린 이날 행사에서는 어두운 하늘에 별을 더하듯 힘겨운 삶에도 빛나는 기억을 더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 낭송도 진행됐다.
꽃과 나무에서 발견한 삶
북콘서트에서는 꽃을 좋아하는 한 작가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그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자주 찍었으며, 담장에 작고 예쁜 호박 두 개가 열린 모습을 보고 가족이 두 명 늘었다고 표현했다. 도록에 모두 실리지는 않았지만 그가 작성한 기록 상당수에는 꽃과 산, 가족 이야기가 담겼다.
짓밟힌 꽃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떠올린 작가의 사연도 전해졌다. 상처 입은 듯한 꽃이 여전히 웃는 것처럼 보였고, 작가는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기 위해 아침마다 일부러 웃는다고 말했다. 무대에서는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과 삶을 견뎌 온 방식이 차분하게 소개됐다.
정 작가의 글에는 나무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라며 새들이 안전하게 앉을 수 있도록 많은 가지를 내어 주고 싶어 한다는 상상이 담겼다. 키가 크거나 작고, 강하거나 풍성하게 자라는 나무의 모습을 통해 배려의 의미를 풀어낸 작품이었다.
작가들은 일상의 작은 대상을 자신만의 세계로 바라봤다. 집 앞의 꽃 한 송이와 나뭇가지, 담장을 타고 오른 호박도 그림일기의 소재가 됐다. 관객들은 작품을 함께 읽으며 익숙한 풍경이 개인의 기억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삶의 아픔도 글과 그림으로
곽 작가는 결혼식 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화장실에서 울었던 기억을 ‘여자의 일생’이라는 그림일기에 담았다. 6·25전쟁 당시 피란 과정에서 너무 어려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보리밭에 숨어 있어야 했던 기억도 작품에 반영됐다.
오랜 상처를 안고 살아왔지만 현장에 소개된 곽 작가의 모습은 밝고 유쾌했다. 그는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새끼들에게 양보하고 남은 그릇만 핥는 장면을 본 뒤 고기를 삼키기 어려웠던 사연도 글로 남겼다. 말하지 못하는 동물의 모성까지 헤아린 기록에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드러났다.
팔 수술 뒤 통증을 겪는 이 작가는 그림을 그리다가 팔을 주무르고 다시 작업을 이어갈 만큼 수업에 열의를 보였다. 젊은 시절 헤어진 아들을 오랫동안 찾았으며, 2026년에 다시 만났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 작가의 일기에는 생일에 다녀간 아들을 다시 기다리는 마음과 일 년에 한 번밖에 만나기 어려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 친정 동생들과 함께 지내다 혼자가 된 뒤 느낀 쓸쓸함도 기록했다. 그는 ‘8학년 3반 작가’라는 이름을 얻은 데 감사를 표하면서, 동무들이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 작가는 쓰레기와 환경 문제, 공중도덕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개인의 추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의 생활환경을 살피는 시선까지 글에 담았다.
다섯 작가가 나눈 진솔한 대화
북콘서트에 참석한 다섯 작가는 한 사람씩 자신의 글을 읽고 작품에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참석자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도 마련됐다. 객석에서는 따뜻한 격려가 이어졌고, 작가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 과정에서는 신발을 벗고 젊은이들과 춤을 춘 이야기처럼 유쾌한 장면도 있었다. 작가들의 재치 있는 표현 덕분에 함께 웃은 날이 많았고, 힘겨웠던 삶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나눈 순간도 있었다.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은 글과 그림을 통해 하나의 공동 작업으로 모였다.
김미정 마을활동가는 도록의 마지막 글을 읽으며 어르신들과 함께한 시간을 소개했다. 작은 일상에 감사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빛나게 바라보는 참여자들과의 시간이 소중했다고 전했다. 힘겨운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충분히 잘 살아왔다고 격려하고 축하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프로그램은 과거의 상처와 고단했던 세월을 무겁게 되풀이하기보다 지금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움과 소소한 행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참여자들은 자신의 현재를 꽃과 나무, 가족과 이웃, 계절의 풍경으로 풀어냈다.
한 권의 도록에 담긴 마을
완성된 가조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에는 짧은 글과 한 장의 그림마다 작가들이 살아온 세월과 감성이 담겼다. 정형화된 문장이나 전문적인 화법보다 어르신들이 평소 사용하는 말과 표현을 살려 작품을 구성했다.
도록과 함께 제작된 가방 기념품에도 프로그램의 결과물이 반영됐다. 오전 전달식과 오후 북콘서트를 통해 작품은 개인의 일기장을 넘어 주민과 행정, 마을활동가가 함께 나누는 지역의 기록으로 공개됐다.
가조 할머니들의 도전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쓰고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글을 처음 적어 본 순간부터 작품을 묶어 도록을 만들고 관객 앞에서 낭독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성과공유회의 중요한 내용이 됐다.
비가 내린 행사장 안에서는 작가들의 웃음과 관객의 박수가 이어졌다. 무대 위 어르신들은 긴장하기보다 여유 있게 이야기를 풀어냈고, 객석은 때로 웃음으로 활기를 띠고 때로는 조용한 공감 속에 가라앉았다.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사람이 경청하는 모습이 북콘서트의 분위기를 채웠다.
주민의 기록으로 확인한 마을 성장
2026년 거창군 마을만들기 성과공유회는 사업 결과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의 목소리와 생활 속 변화를 작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가조 할머니들은 글과 그림을 통해 평범한 하루가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임을 직접 보여줬다.
거창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주민과 마을활동가, 관계자들이 한 해의 활동을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됐다. 가조 할머니들의 그림일기는 농촌의 일상과 개인의 기억,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자연을 향한 애정, 공동체를 살피는 마음을 한 권에 모았다.
마을활동가의 세심한 지원과 어르신들의 꾸준한 참여로 완성된 작품은 북콘서트 무대에서 다시 생생한 말이 됐다. 작가들의 삶은 글과 그림으로 남았고, 그 기록을 함께 읽은 주민들은 마을이 품은 사람과 이야기를 새롭게 확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