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을 닮은 탈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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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을 닮은 탈의 얼굴

국민배우 최불암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오랫동안 대중과 함께해 온 여러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 《전원일기》의 김 회장, 《한국인의 밥상》의 이야기꾼까지 한 배우가 작품마다 보여준 얼굴은 달랐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었다.

배우가 다양한 인물의 얼굴로 대중과 만났다면, 경남 고성의 고성탈박물관에는 옛사람들이 웃음과 풍자, 믿음과 염원을 담아 만든 얼굴들이 모여 있다. 탈은 얼굴을 가리는 도구이면서도 사람의 속마음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전통문화의 매개체다.

새 단장을 마친 고성탈박물관

가을 햇살 아래 고성탈박물관 건물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외벽을 채운 익살스러운 탈 그림은 춤을 추듯 생동감이 넘친다. 박물관은 2026년 1월 새 단장을 마치고 관람객을 맞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붉은 벽에 적힌 어떤 탈을 쓰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웃는 얼굴과 화난 얼굴, 점잖은 얼굴과 익살스러운 얼굴 가운데 어느 모습이 마음속 얼굴과 가까운지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옛사람의 믿음을 품은 탈

전시장에는 옛사람들의 믿음이 담긴 탈부터 민중의 웃음과 풍자를 보여주는 탈까지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굵은 눈썹과 깊은 주름이 돋보이는 방상씨탈, 강렬한 색과 커다란 눈과 코를 지닌 처용탈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표정은 다르지만 탈마다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스며 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평안을 기원했던 얼굴은 탈이 단순한 공연 소품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장된 눈과 코, 깊게 파인 주름 하나에도 공동체의 믿음과 바람이 담겼다.

고성오광대가 풀어낸 삶

고성오광대 전시에서는 문둥북춤의 탈과 북을 만날 수 있다. 첫 마당인 문둥북춤은 배고픔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인물이 북춤을 추며 신명을 풀어내는 장면이다. 말 대신 몸짓과 장단으로 고단한 삶을 표현하고, 눌린 감정을 놀이판의 흥으로 바꾼다.

전시 설명에 등장하는 ‘문둥이’는 오늘날 차별적 의미가 있어 사용에 주의해야 하는 표현이다. 역사적 맥락에서는 문둥이 한센인이라는 의미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시는 과거의 표현과 당시 탈놀이가 담아낸 삶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오방색 물고기 형상의 탈과 양반탈도 고성오광대의 다채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양반과 말뚝이처럼 서로 다른 처지의 인물이 한판에 등장하고, 계층 간 긴장과 삶의 모순은 웃음과 재치로 풀어진다.

웃음으로 세상을 비튼 탈춤

한국의 탈춤은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탈춤은 우스꽝스러운 얼굴과 과장된 몸짓을 빌려 세상의 불합리와 권위를 꼬집는다. 누구나 어울려 웃고 떠들 수 있는 놀이판에서는 점잖은 체하던 양반의 권위도 뒤집힌다.

전시 진열장에는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낸 말뚝이, 위엄을 내세우는 양반, 흰 천 아래 몸을 감춘 주지 등 여러 탈이 자리한다.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가졌지만 공통적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얼굴을 가렸는데도 오히려 마음과 세상살이가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탈춤의 힘이다.

직접 만나는 탈놀이 체험

관람객은 전시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탈놀이의 대사와 몸짓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화면을 보며 탈의 대사를 따라 하는 공간에서는 탈꾼처럼 목소리를 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말뚝이와 양반으로 변신할 수 있는 의상 체험 공간에는 검은 옷과 노란 도포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옷을 바꿔 입는 순간 인물과 신분이 달라지는 탈놀이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양반과 평민의 위치가 뒤바뀌는 설정은 우습고도 통쾌한 전통 풍자의 맛을 전한다.

두 번째 전시실의 커다란 사자

두 번째 상설전시실 중앙에는 커다란 사자탈이 우뚝 서 있다. 붉은 얼굴과 동그란 눈, 발끝까지 내려오는 하얀 털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금세라도 몸을 흔들며 관람객 앞으로 다가올 듯한 모습에서 탈놀이의 역동성이 전해진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산대놀이, 남사당 덧뵈기, 발탈에 관한 전시도 이어진다. 지역에 따라 탈의 생김새와 놀이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세상살이를 무대 위에 풀어냈다는 점은 같다. 다양한 탈이 한자리에 모이며 한국 탈문화의 폭넓은 흐름을 보여준다.

보름달 아래 살아나는 탈

실감영상관에 들어서면 전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두운 하늘에 별이 떠오르고 둥근 보름달이 솟는다. 마을의 작은 집마다 불빛이 켜지고, 달빛을 받은 지붕은 고요하게 빛난다.

푸른 들판에는 말뚝이와 양반을 비롯한 탈놀이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이 팔을 벌리고 발을 구르며 춤추자 유리 진열장 안에 멈춰 있던 탈이 다시 살아난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전통 탈춤의 장단과 움직임을 시청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 뒤 머물 수 있는 사랑채

2층 기획전시실은 방문 당시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물관의 다목적문화공간인 사랑채에는 밝은 창과 책장, 넓은 탁자가 마련돼 있다. 창밖으로는 가을빛을 머금은 나무가 보이고, 야외 테라스에서는 주변 풍경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

사랑채에서는 무료 커피도 이용할 수 있다. 테라스의 둥근 탁자에는 하늘과 구름이 비치고, 멀리 보이는 붉은 탈 조형물은 두 팔을 벌린 채 웃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전시 관람 뒤 탈이 지닌 의미를 되짚으며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다.

탈을 벗어도 남는 얼굴

고성탈박물관의 탈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관람객과 마주한다. 웃거나 화를 내고, 권위를 내세우거나 세상을 향해 익살을 부린다. 표정과 역할은 달라도 그 안에는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불암 역시 오랜 연기 인생 동안 여러 인물의 얼굴로 대중 곁에 머물렀다. 박 반장의 엄격함과 김 회장의 푸근함, 밥상 앞에서 이야기를 건네던 따뜻한 목소리는 서로 다른 모습이면서도 한 배우가 남긴 기억으로 이어진다.

탈을 벗은 뒤에도 오래 남는 얼굴이 있다. 가을 햇살이 붉은 탈의 둥근 볼에 내려앉는 박물관 풍경은 여러 배역으로 한 시대를 함께한 국민배우의 얼굴을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고성탈박물관 이용 정보

구분내용
위치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율대2길 23
관람시간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부터 2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 날 휴관
관람료무료
주차고성탈박물관 전용 주차장 무료 이용
편의시설상설전시실 2곳, 실감영상관, 체험 공간, 사랑채, 야외 테라스
문의고성탈박물관 055-672-8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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