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밤을 잇다

가야의 역사와 문화, 시민의 참여가 어우러진 ‘2026 김해국가유산야행’이 김해의 가을밤을 풍성하게 채웠다. 수로왕릉과 수릉원, 대성동고분군 일대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플래시몹과 다문화 퍼레이드, 전통 공연, 미디어 파사드, 시민 참여 강강술래로 이어졌다. 국가유산을 단순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빛과 음악, 춤을 통해 가까이 경험하도록 구성된 현장이었다.
행사의 흐름은 수릉원에서 시작해 수로왕릉을 거쳐 대성동고분군으로 이어졌다. 각 장소가 지닌 역사적 공간감 위에 현대적인 영상 연출과 시민 참여형 공연이 더해지면서, 과거의 이야기와 오늘의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장면이 펼쳐졌다.
수릉원에서 울린 시작 신호
개막 현장의 출발점은 수릉원이었다. 행사 시작을 앞두고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 줄을 맞추며 공연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뒤 경쾌한 음악이 흐르자 대열이 동시에 움직였고, 깜짝 플래시몹이 수릉원의 분위기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이 무대는 지역 예술인과 시민이 참여한 다문화 퍼레이드 ‘가야의 연’의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었다. 정해진 동작을 함께 펼치는 참가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개막 현장은 활기를 띠었다.
퍼레이드는 수릉원에서 수로왕릉 방향으로 이동했다. 전통 한복을 갖춰 입은 참가자들이 행렬을 이끌었으며, 전통정원 명월 입구에서는 다시 한번 플래시몹이 펼쳐졌다. 길을 지나던 시민들도 공연을 바라보며 현장의 흥겨운 흐름을 함께했다.
수로왕릉 담장을 따라 이어진 거리 행렬에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전통 의상과 우리 한복이 한데 어우러졌다. 색채가 뚜렷한 의상들이 가을밤의 조명과 만나면서 행렬은 더욱 화사하게 보였다. 서로 다른 문화가 나란히 걷는 모습은 ‘인연’을 뜻하는 퍼레이드의 이름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가야금과 춤으로 채운 무대
수릉원 메인 무대에서는 개막 식전 공연이 진행됐다. ‘가야의 연’ 퍼레이드 개막식 3장 공연에서는 전문 무용수들의 춤과 가야금 선율이 어우러졌다. 차분하게 흐르는 국악의 음색 위로 무용수들의 섬세한 동작이 이어지며 하나의 완결된 작품과 같은 장면을 만들었다.
거리 퍼레이드를 마친 단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주변으로 다시 모였다. 여러 구간을 함께 이동한 참가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모습에서는 공연을 무사히 마친 기쁨과 편안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무대 위 공연과 거리 행렬이 따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수로왕릉에 펼쳐진 빛의 서사
행사의 무대는 수로왕릉으로 이어졌다. 왕릉을 배경으로 시작된 미디어 파사드는 ‘수로의 시간을 걷는 밤’을 주제로 가야의 역사를 빛과 영상으로 풀어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화면이 공간 위에 펼쳐지면서 수로왕릉은 밤의 대형 무대로 바뀌었다.
가야의 건국신화가 현대적인 영상 기술과 만나 되살아나는 과정은 이번 야행의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오랜 역사를 품은 국가유산을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관람객이 이해하기 쉬운 시각적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다. 묵직한 안내 음성과 영상이 함께 흐르며 관람객의 시선은 수로왕릉에 집중됐다.
과거의 가야와 오늘의 기술이 만난 미디어 파사드는 국가유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 핵심 장면이었다. 웅장한 역사 이야기와 생동감 있는 영상이 겹치면서 현장에는 깊은 몰입감이 형성됐다.
수로왕릉 연못가에는 둥근 보름달 모양의 풍선이 환하게 빛났다. 물가와 조명, 둥근 달의 형태가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을 만들었고, 미디어 파사드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관람객들은 빛으로 물든 연못 주변을 바라보며 가을밤의 정취를 즐겼다.
대성동고분군을 울린 북소리
다음 무대는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대성동고분군 잔디광장이었다. 넓은 잔디밭의 보름달 풍선 주변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모였다. 고분군의 완만한 풍경과 야간 조명이 어우러진 가운데 전통무용단의 강강술래 공연이 시작됐다.
공연의 문을 연 것은 웅장한 큰북 소리였다. 잔디광장과 밤하늘로 퍼지는 북소리가 현장의 긴장감과 기대를 끌어올렸다. 뒤이어 매화무용단이 우아한 동작을 선보이며 무대를 채웠다. 힘 있는 장단과 부드러운 춤선이 대비를 이루면서 공연의 흐름은 더욱 풍성해졌다.
무용단의 움직임은 보름달 모양의 조형물, 고분군의 야간 풍경과 조화를 이뤘다. 관람객들은 넓게 열린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공연을 지켜봤으며, 큰북에서 시작된 힘찬 울림은 다음 순서인 시민 참여 강강술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민이 완성한 강강술래
이날 행사의 절정은 전문 무용단과 시민이 함께한 강강술래였다.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무용단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원은 점차 넓어졌고, 함께 노래하며 도는 움직임이 잔디광장을 가득 채웠다.
공연을 바라보던 시민이 직접 참여자로 나서면서 국가유산야행은 모두가 함께 만드는 축제로 완성됐다. 세대와 역할을 넘어 손을 맞잡은 모습은 집단 가무가 지닌 공동체적 성격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강강술래는 보름달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던 집단 가무 놀이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기원하던 의식에서 비롯된 문화유산으로 전해진다. 이날 공연에서도 원을 그리며 도는 기본 동작뿐 아니라 여러 전통 놀이가 함께 펼쳐졌다.
가무 중간에는 어린 소녀가 처녀의 등에 올라타 이동하는 동작도 등장했다. 다양한 놀이 요소가 이어지면서 강강술래 특유의 흥과 풍성함이 살아났다. 전문 무용단의 안정된 움직임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맞물리며 공연은 한층 활기를 띠었다.
강강술래를 마친 뒤에는 시민과 전문 무용단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참가자들의 환한 표정 속에서 수릉원의 플래시몹으로 시작해 대성동고분군의 원무로 이어진 가을밤의 여정도 마무리됐다.
역사 공간을 연결한 가을밤
이번 행사는 수릉원과 수로왕릉, 대성동고분군이라는 역사 공간을 하나의 야간 문화 동선으로 엮었다. 수릉원에서는 시민과 지역 예술인이 공연의 문을 열었고, 수로왕릉에서는 가야 건국신화가 미디어 파사드로 되살아났다.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전통무용과 시민 참여 강강술래가 밤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다.
플래시몹과 다문화 퍼레이드는 개방성과 활기를 더했고, 가야금과 전통무용은 가야 문화의 정서를 무대 위에 담았다. 미디어 파사드는 역사 이야기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으며, 강강술래는 관람객을 축제의 주체로 이끌었다. 서로 다른 형식의 프로그램이 국가유산이라는 공통된 축을 따라 이어졌다는 점이 이번 야행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가을밤의 고즈넉한 정취 속에서 빛과 음악, 전통 의상과 춤이 어우러졌다. 국가유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장면들은 가야의 역사가 현재의 시민 문화와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해의 역사적 공간은 이날 보존의 대상인 동시에 시민이 함께 걷고 보고 참여하는 살아 있는 문화 현장이 됐다.
행사 장소 정보
| 장소 | 위치 | 주요 내용 |
|---|---|---|
| 김해수로왕릉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 | ‘수로의 시간을 걷는 밤’ 미디어 파사드와 보름달 풍선 연출 |
| 수릉원 |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261번길 35 김해민속박물관 | 플래시몹과 ‘가야의 연’ 퍼레이드, 개막 식전 공연 |
| 김해대성동고분군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26 | 큰북과 매화무용단 공연, 시민 참여 강강술래 |
